사람은 결국 죽는다.
이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기에 살다가 미치도록 힘든 날엔 무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나 싶다.
'어차피 죽는데 왜?'
나는 오랜 시간 이 생각을 했다.
대체 나는, 아니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어차피 죽으면 다 소용도 없는 거.
현재를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이런 생각은 삶이 만족스러울 때 들진 않는다. 일상에 지쳤을 때 생각한다.
나 역시 진로와 직업 문제로 많은 시간 고민했고
힘든 시간을 보냈고, 또 현재를 보내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고민하고 생각한다고 답을 얻지는 못했다. 사는 이유를 모른다고 내가 지금 당장 죽을 것도 아니니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면 자연스럽게 잊혀 가는 질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또 일상에 버거움이 찾아오면 습관처럼 이렇게까지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 찾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데에는 가치 있는 어떤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 이유마저 없으면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일, 지금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해야 할 일 모두 의미가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찾지 못했던 이 질문의 답을 나는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이란 책에서 답을 얻었다.
'사는 게 뭔가, 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들면서 다시 묻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삶이 ‘왜’라는 생각보다 먼저이기 때문이에요.
즉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지요.
살고 있으니 생각도 하는 건데, ‘왜 사는지’를 자꾸 물으니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
풀도 그냥 살고 토끼도 그냥 살고 사람도 그냥 삽니다.
또 때가 되면 죽습니다.
살고 싶어서 살고 죽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니라, 삶은 그냥 주어졌고 때가 되면 죽는 거예요.
결국 주어진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워하며 살 것인가, 즐거워하며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우문현답이었다.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내가 지금까지 했던 '왜 살까'란 질문이 참으로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삶에 특별함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잦은 경쟁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괴로움으로 스스로의 자존감을 갉아먹을 필요도 없다.
삶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삶은 그저 주어진 것이고 우리는 그저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수많은 에세이들이 말하듯
너무 애쓰지 말고 살아야 한다.